이모는 누구에게나 반가운 사람이었다.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옛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곤 했다.
이모는 부모의 사랑을 이길 자식은 없다며 할머니의 희생을 치켜세웠고,
그러면 할머니는 “됐다, 그만해라.”며 민망해하셨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친척들은 이모의 너스레에 깔깔 웃었다.
이모는 언제나, 딸이 없어서 그게 아쉽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이모에겐 아들만 두 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첫째 아들, 나에게는 사촌오빠인 박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고집이 셌다.
“요한아, 옆집 아처럼 엄마한테 사근사근하면 안 되겠나?”
이모는 종종 오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오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엄마는 가 엄마만큼 우리 얘기 잘 들어주나”며 반박했다.
오빠는 착하기는 한데 그저 자기 엄마에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그런 오빠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스물, 고작 스무 살 때였다.
이모는 간암을 앓았다.
간암은 빠르게 전이되었고 힘겨운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다.
다섯 번째 항암 치료를 받던 날, 이모는 주치의와 의논 후 간이식을 결정했다.
주치의가 제안한 방법은 이모의 간을 완전히 떼어내고
기증자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기증자의 건강이 중요했다.
기증자는 젊으면 젊을수록,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좋다고 했다.
이모네 집에서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은 요한 오빠밖에 없었다.
오빠에게 간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모부의 모습은 꼭 별주부전의 거북이 같았다.
용왕님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가져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토끼가 아들이라니.
토끼와 거북이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만났고,
거북이는 어렵게 토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 그건 당연한 거다.”
자신의 간 절반 이상을 떼어줘야 하는 대수술을 앞에 두고 당연하다니.
토끼에겐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당황한 거북이가 더듬거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토끼는 대답했다.
“내가 엄마 아들이잖아. 그건 당연한 거다.”
이식을 결정하고 동의서를 쓰는 토끼에게,
의사 선생님은 전신마취를 할 거라는 이야기와 혹시 모를 상황들을 설명해 주었다.
잔뜩 겁을 먹은 토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신마취와 관련된 영상이며 자료를 다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신마취의 부작용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토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기증자가 위험하면 수술을 중단할 거라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눈으로 직접 부작용 영상을 확인한 토끼의 입장은 달랐다.
덮쳐오는 두려움이 토끼의 밤을 더 깜깜하게 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밤의 온도를 이제는 느끼지 못 할 수도 있겠구나.’
그날 밤 토끼의 두려움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토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도 토끼는 아무도 모르게 최고의 간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싫어하던 운동을 하고, 튀기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토끼에게 요구한 젊고 싱싱한 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 스물.
토끼는 한 번뿐인 청춘의 시간을 ‘용왕님께 바칠 싱싱한 간’을 만드는 데 들였다.
기나긴 수술이 끝나고 용왕님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나 토끼는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원래 토끼는 간을 60%만 떼어 주기로 했었지만,
간이 예상보다 작아 70%나 떼어줘야 했고,
예정보다 많은 양을 떼어낸 게 토끼에게 무리를 주었다.
여덟 시간이 넘게 토끼는 침대에 누워 쌕쌕거리며 숨만 쉬었다.
토끼가 눈을 뜨지 못하는 내내 용왕님과 거북이는 수술 전보다 더 애를 태웠다.
‘혹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토끼가 눈을 떴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났고 용왕님도 토끼도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큰일을 겪고 나서도 오빠는 여전하다.
예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사근사근한 아들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농담의 수위였다.
간을 내주면 사주기로 했던 최신형 노트북을 왜 안 사주냐느니,
내 간 다시 가져갈지도 모르니 문 잘 걸어 놓고 자라느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뚝뚝한 말 속에 애정이 흐른다.
이모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엄마 간은 엄마 거 아니고 내 것이니
잘 돌보라고 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엄마는 이제 내 딸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잘해라.”
수술 후 오빠는 아직도 수영장과 목욕탕을 못 간다.
몸에 적나라하게 새겨진 상처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모는 말했다.
그때는 오빠 마음을 다 몰랐다고, 삶의 갈림길에 서 보니 오빠 마음이 보인다 했다.
고작 스물의 아들내미가 어떤 결정을 했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예전처럼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해도
아들 몸엔 절대 칼을 대지 못할 거라고.
수술 전날, 오빠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던 이모는
지금이라도 두려우면 꼭 수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오빠는 이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놓았다.
“엄마, 내 사실 지금 떨린다. 근데 내가 엄마한테 간 떼 주는 건 당연한 거다.
걱정되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엄마 닮은 내 동생 은강이가
나중에 안 좋아지면 간 떼 줄 사람 없는데,
나는 지금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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